삶이 불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왜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걸까?
메이트,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사는 이유를 ‘행복’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하는 수많은 노력들도 결국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들이죠. 그런데 이 행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 있어요. 바로 우리의 뇌예요. 뇌가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행복이 아닌 우리의 생존이거든요. 뇌는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 생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그렇게 진화해 왔어요.
우리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뇌가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원시시대에 불확실성은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단순한 바람 소리인지 포식자의 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뇌는 불확실한 상황을 일단 위협으로 인식하게끔 진화해 왔거든요.
실제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 뇌는 위험을 탐지하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 분비를 늘려서 긴장 상태를 유지시켜요. 뇌는 끊임없이 각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예측하며 탐색하는데 이 작업은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모해요. 우리 몸의 스트레스 반응은 분명한 고통보다 불확실한 위협 앞에서 더 오래 그리고 강하게 유지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거죠.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하는 실수들
삶은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던져주고, 뇌는 불확실성을 큰 고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동시에 불확실성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 해요. 그래서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버릴 때가 많아요. 충분한 정보가 없고,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기다림의 상황이 불편하고 싫으니까 그냥 내가 편한 대로 답을 정해버리는 거예요. 뇌는 불확실성을 위협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릴 때 나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때가 많아요. 모호함을 견디는 것보다 오히려 나쁜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은 반대로 불확실한 상황 자체를 완전히 회피하는 선택을 하기도 해요. 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힘드니 아예 생각도 안 나게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리는 거예요.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도망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요.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거나,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거나, 잠시 생각을 잊게 도와주는 술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서 직면해야 할 것조차 보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하죠. 물론, 적절한 운동이나 사교 모임 같은 것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로만 시간을 보내면서 문제를 회피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수 있어요.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단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불확실성과 마주할 수밖에는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배워야 할 가장 큰 기술은 삶의 수많은 불확실성 앞에서 섣부르게 예측하거나, 과도하게 상상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불확실성과 함께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일는지도 모르겠어요.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남긴 '평온을 비는 기도'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바로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그 안절부절못함, 불편한 마음을 회피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느끼는 힘을 기르는 거예요. 내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이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느껴지는지 알아차리고 그대로 느껴보는 거죠. 일부러 없애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잘 느껴주다 보면 불편한 느낌은 점차 잦아들어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이때 중요한 건 결과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고 그저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맡겨보는 거예요. 사실 결과에 집착할수록 정작 지금 해야 할 일에는 집중하지 못해요. 마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으니까요. 반대로 결과를 손에서 놓으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에 쓸 수 있는 온전한 힘이 생겨요. 무엇보다 확실하게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느낄 때 결과가 어떻든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이 생겨요.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오히려 결과에는 초연해질 수 있어요. 잘되면 그것대로 감사하고, 잘 안되어도 후회가 남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으니까요.
이렇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요. 이 지혜는 머리로 생각하며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보는 힘이에요. 한 걸음 물러서서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붙잡으려 하는지, 내가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무엇에 집착하는지 관찰해보는 거죠. 생각으로 하는 판단을 내려놓고 나에게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저 관찰할 때 분별의 지혜는 절로 자라나요. 불편하지만 그저 느끼고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떠오르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한 가지 믿음의 전환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미래를 알아야 한다"에서 "나는 무엇이 오든 그걸 감당할 수 있다"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거예요. 이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오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예요.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어떤 결과가 찾아와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선언인 거죠. 지금 메이트의 삶에는 어떤 불확실성이 있나요? 그 불확실성을 피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그것과 함께 삶을 힘껏 살아가 보세요. 바로 그 과정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진짜 삶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