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어디에서 올까요?
끊이지 않는 생각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은 저절로 생겨난다
메이트, 지난주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아마 기억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퀸즈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 약 6200가지의 생각을 떠올린다고 해요.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분당 약 6.5개의 생각을 하며, 9초에 한 번씩 생각이 전환되는 거죠. 9초에 한 번씩 떠오르는 생각들 중 우리가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얼마나 될까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생각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떠올라요. 우리가 아무리 ‘앞으로 1시간 동안은 잡생각하지 않을 테다!’라고 굳게 다짐해도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오르며 우리의 다짐을 무색하게 만드는 거죠.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이 자연 법칙인 것처럼, 인간인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도 인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자연 법칙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대신 ‘내가 만들어 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곤 해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자책하고, 집중하고 싶은데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생각하며 자신을 원망하는 식이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억지로 통제하려 할수록 생각은 우리를 더 괴롭게 할 뿐이에요.
생각의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생각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지만, 생각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해요. 생각은 아무런 인과 관계 없이 툭 튀어나오는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학습된 패턴, 감정 상태, 내가 현재 처한 환경과 나에게 주어지는 자극, 생리적 상태 같은 수많은 조건들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거든요. 이를테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만들어 내요. 출근길에 본 성공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지루한 미팅 시간에 떠오르며, 나도 퇴사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나눈 동료와의 대화가 과거에 발표하다 실수한 경험과 연결되며 이번에도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나를 괴롭히기도 하죠.
우리는 내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생각은 이렇게 내가 처한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에요. 이 조건들은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복합적으로 작용해요. 내가 어제 본 영화가 오늘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주고, 그 감정은 과거의 기억에 의해 증폭되어 생각을 불러오고, 생각은 다시 나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서로 얽혀 들어가며 생각을 발생시키는 식이죠. 생각은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발생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조건이 일어나면 생겨나는 식으로 무한히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요.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생각은 조건에 따라 저절로 생성되고 소멸될 뿐이니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는 생각의 특성
이렇게 조건따라 저절로 발생하는 생각은 한번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는 특징도 가지고 있어요. 하나의 단순한 인식이 점점 복잡한 생각과 감정, 추론으로 확산되며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거죠.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고 해봐요. 처음에는 그냥 '누가 지나갔네' 정도로 시작했던 생각이 '나를 무시한 거 아냐?', '내가 뭘 잘못했나?', '다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로 순식간에 확장되어 가요. 여기에서 사실은 그저 누군가 지나갔다는 것뿐인데, 우리 마음은 그 위에 수많은 해석과 의미를 덧붙이며 나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거죠.
붓다는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하며 현실을 왜곡하고 고통을 만들어 내는 정신 작용을 빠빤차라고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빠빤차로 생각이 확산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나’중심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의 내부에 갈등을 일으키고 고통을 일으켜요. 내 통제를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확산되는 생각이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본 이유인 거죠. 흥미로운 사실은 생각의 확산을 뜻하는 ‘빠빤차’의 반댓말인 ‘니빠빤차’가 열반, 즉 고통으로부터의 영원한 자유와 동의어라는 점이에요. 생각의 확산이 멈춘 지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을 수 있는 지점이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거죠.
생각을 통제하는 대신, 생각을 알아차리기
우리는 생각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어요. 저절로 확산되어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생각의 특성을 막을 수도 없죠. 그럼, 우리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생각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를 때 ‘아, 지금 이런 생각이 떠올랐구나’라고 관찰자 모드로 관찰하는 거죠.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지켜보며 관찰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거예요.
이때 중요한 것은 생각을 알아차릴 때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니", "나는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지"라며 자책하는 순간, 그것 자체가 또 다른 빠빤차가 되어 버려요. 그저 "생각이 일어났네", "지금 이런 감정이 느껴지네"라고 담담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이렇게 생각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게 돼요. "나는 불안하다"가 아니라 "불안이라는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로 바뀌고. "내가 쓸모없다"가 아니라 "쓸모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되는 거예요. 이 작은 차이가 엄청난 자유를 가져다줘요. 생각은 여전히 일어나지만, 그것에 휩쓸리지 않게 되고 쓸데없는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생각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과도 같아요. 때로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지만 불청객이 찾아올 때도 많을 거예요. 이때 불청객에게 내 집의 주인 자리를 내주지 마세요. 다만, 손님이 누구인지 어떤 손님이 찾아왔는지 알아차려 준다면 손님은 저절로 집을 나갈 거예요. 손님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내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이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생각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