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나, 왜 막막한 걸까?
막막한 이유는 내가 노력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막막할까요?
늘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는데, 한 해를 돌아보니 올해는 또 뭘 했는지 허무해지고, 새해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기도 하지만, 내 인생 도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순간, 혹시 메이트님도 경험해 보셨나요?

나이를 먹으면, 불안함도 의심도 사라질 줄 알았지만...
이십 대 초반에 서른이 넘은 선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선배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러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했죠. '아니, 서른 살이나 됐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그 당시 저는 서른 살 즈음에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도 않고, 나의 길에 대한 불안함도 없이 모든 것들이 확실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성공한 주인공들의 모습처럼요. 그래서 막막함을 이야기하는 선배를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그 선배처럼 나이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오히려 막막함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가 나의 꿈이라고 굳게 믿었던 일은 나의 꿈이 아니라, 사회가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주입했던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꿈에 대한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식듯 조금씩 식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인생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듯 간단히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던 거죠.
막막함을 구원해 준 한 문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것이 더 확실해질 거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 막막함을 구원해 준 문장은 파우스트에 나오는 이 한 문장이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최근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는 '노력'에 너무 치우쳐 있는 이 문장을 이렇게 수정 번역하기도 했어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이 문장은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문장처럼 보여요. 노력과 방황, 지향과 방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은 아니니까요. 이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더 철저하게 열심히 준비한다면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 믿었죠. 그래서 방황하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내가 또 뭘 빠트린 걸까? 무엇이 부족했길래 나는 자꾸만 방황하게 되는 걸까 생각했죠.
꿈꾸고 노력하기 때문에 방황할 수 있다.
그런데, 세기의 대문호 괴테는 그가 평생을 거쳐 쓴 대작 파우스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고 말이에요.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나의 지향점이 희미해서 방황했던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지향하기 때문에 방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길을 찾을 때는 열심히 지도를 보고 준비한다면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생이라는 것은 어딘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방황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청난 위안과 위로를 받았어요.
원대한 계획 앞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메이트님도 괴테의 저 문장을 천천히 마음에 새겨보세요. 메이트님이 방황하는 이유는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무언가를 지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