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에게 배우는 나답게 사는 지혜
잡초는 어떻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잡초에도 각자의 이름이 있어요!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라고 해요. 우리는 자신이 심은 것이 아닌 모든 풀들을 잡초라 통칭하며 우리가 공들여 재배하고 가꾸고자 하는 작물과 구분 지어요. 농사를 짓기 위해 토마토 씨앗을 뿌렸는데 토마토가 아닌 다른 풀이 자라나면 그 풀은 내가 심은 소중한 작물의 영양분을 빼앗아 가는 잡초가 되는 거죠. 정원도 마찬가지예요. 깔끔한 잔디를 심어놓은 마당에 내가 심지 않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우리는 잔디가 아닌 풀들을 모두 잡초라 여기며 뽑아버리죠.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작가는 잡초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요.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식물은 약 35만여 가지가 되고, 이 중 인간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고작 3천 여종 가량인데, 인간이 재배하고 있지 않다고 34만 7천여 종의 식물을 모두 잡초라고 퉁치며 무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죠.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지 그냥 스쳐 보내기 쉬운 잡초에도 모두 저마다의 이름과 쓰임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죠. 어떤 잡초는 척박한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려 영양분을 끌어 올리기도 하고, 어떤 잡초는 공기 중에서 무기질을 흡수해서 토양으로 보내주기도 해요. 비가 올 때 토양이 유실되지 않게 뿌리로 꽉 잡아 도와주기도 해요. 인간의 입장에서 잡초는 뽑아버려야 하는 풀이지만, 더 큰 생태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잡초가 그곳에 난 것에는 모두 그만의 이유가 있는 거죠.

능동적인 잡초의 삶 vs. 수동적인 작물의 삶
잡초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이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환경에 적응하며 꿋꿋하게 살아가요. 잡초와 대비되는 작물의 삶은 어떨까요? 작물의 삶에는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어요. 작물은 자신이 자라날 곳도, 씨앗이 뿌려질 장소도, 생존할 방법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요. 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작물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죠.
이때 농부의 목표는 더 크고 많은 열매를 맺는 작물을 재배하는 거예요. 이렇게 상품성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작물은 주변의 풀들과 영양분을 나눌 수 없어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영양분을 땅으로부터 가져와야 하기에 땅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의 영양분을 흡수해야 하고, 땅은 영양분을 빼앗겨 황폐해지죠. 작물은 최적의 환경에서 다양한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지만 그만큼 연약해서 병충해나 장마 같은 외부의 환경 변화에 취약하고 작은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죽어버리기도 해요.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잡초의 생존방식
우리가 잡초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잡초는 서로 각자가 가진 고유함을 인정하고 남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잡초 중 하나는 바로 질경이예요. 질경이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나죠. 질경이가 더 높이 자라는 나무의 삶을 동경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함을 버리고 더 높이 자라기 위해 나무와 경쟁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질경이는 나무를 부러워하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어요. 땅에 붙어 자라는 질경이는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해를 받지 못해 살아남을 수 없지만 사람이 자주 걸어 다니는 곳에서는 그 누구와 경쟁하지 않고 해를 듬뿍 받으며 자랄 수 있어요. 게다가 질경이의 씨앗은 끈적해서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묻혀서 번식하기도 쉽죠. 우리가 어디를 가든 질경이를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질경이가 나무와 경쟁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어 질경이답게 살았기 때문이에요.
잡초처럼 나다운 삶을 살아가요!
이 세상에 35만 가지의 각기 다양한 식물 종이 있듯 지구에 있는 70억 인구는 모두 각자 자기만의 고유함이 있어요. 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과 자라나는 모양, 꽃과 열매의 모양이 모두 다른 것처럼 우리 역시 외모, 성격, 타고난 기질, 성공의 기질, 꿈, 취향, 좋아하는 것 모두 다를 수밖에는 없어요. 그것이 남이 보기에 어떠해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성공과 행복 모두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이고, 내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가 정해놓은 모양에 맞추기 위해서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서로 다른 식물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답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숲을 떠올려 보세요.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잡초의 삶과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서 경작되고 팔려나가야 하는 작물의 삶,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메이트님의 선택에 달려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