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몸과 머리 중 어느 쪽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사실 너무 당연해요. 우리는 거의 언제나 몸보다는 머리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거든요.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우리
몸과 머리 중 어느 쪽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사실 너무 당연해요. 우리는 거의 언제나 몸보다는 머리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거든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나 스마트폰 앞에서 보내고,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읽고 판단하고 정리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요. 학교나 회사에서도 생각하고 이해하는 머리의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지다 보니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머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믿으며 살아가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때때로 몸으로 이해해야 할 것도 머리로 이해해 버릴 때가 많아요. 언제 밥을 먹어야 할지 몸의 느낌이 아니라 시계를 보고 정하고, 몸의 피곤한 느낌이 아니라 머리가 시키는 쉬어야 할 것 같은 타이밍에 휴식을 취해요. 운동을 할 때에도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라 스마트워치에 나온 심박수로 얼마나 힘든지를 판단하죠.
이렇게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며 사는 것이 익숙해지다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감정을 처리할 때에도 머리를 사용해요.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분석하고, 상대의 숨은 의도를 추측하며 이해하려 해요. 이해가 되면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생각이 끝없이 꼬리를 물면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증폭되기도 해요. 생각이 감정을 설명하려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다시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 감정이 또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식인거죠.

감정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져요.
긴장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심장이 뛰고, 슬프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흘렀던 경험이 있나요? 우리는 보통 감정이 일어났기에 몸에서 반응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몸이 먼저 반응하며 감정을 만들어 내고, 몸의 반응을 자각하며 비로소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고 이야기해요. 불안해서 가슴이 떨리는 게 아니라 가슴이 떨리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거죠. ‘가슴이 철렁했다.’ ‘속이 끓는다’ ‘속이 타들어 간다’와 같은 표현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어쩌면 몸에서 먼저 생겨나는 신호를 잘 포착했기에 생겨난 것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어요. 감정이 시작되는 곳이 몸이라면, 감정이 사라지는 곳도 몸이라는 거예요. 가슴이 뛰고 불안할 때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면 심장박동이 진정되면서 다시 편안해지잖아요. 머리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기 힘든 불안이 단지 천천히 쉬는 숨 몇 번에 진정되는 거예요. 몸이 제자리도 돌아오면 몸에서 시작된 감정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니까요. 그래서 감정이 느껴질 때 몸의 반응을 곧장 알아차리고 그 반응을 느껴주면 감정도 차차 사그라들어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몸을 느끼는 것에는 너무나 둔감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는 너무나 민첩하다는 데 있어요. 그래서 감정이 일어나면 바로 머리가 개입해서 생각을 만들어 내요.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서 감정의 파고를 높이 만들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드라마를 써 내려가면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해요. 몸으로 가서 알아차렸으면 진작 사라졌을 감정은 그렇게 생각이라는 먹이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자라나죠.
몸의 감각을 잃어버리며 함께 잃어버리는 것들
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산다는 건 감정을 오래 붙잡게 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아요. 몸의 감각이 흐려질수록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께 잃어버리고 있거든요. 먼저 우리는 나의 한계를 알려주는 신호를 잃어버려요. 몸은 지치기 훨씬 전부터 어깨를 굳게 하고, 소화를 더디게 하고, 아침에 눈뜨기 힘들게 만들며 신호를 보내요. 그런데 머리는 '이 정도는 다들 버티는데', '이번 일만 끝나면 쉬자'며 그 신호를 가볍게 넘겨버리죠. 커피 한 잔으로, 조금만 더 하는 마음으로 버티다가 어느 날 몸이 멈춰 서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식이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단서도 잃어버려요. 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머리보다 솔직하게 알려줘요. 어떤 사람 곁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풀리고, 어떤 자리에서는 이유 없이 몸이 움츠러들죠.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숨이 편안해지고, 억지로 하는 일 앞에서는 속이 답답해지고요. 이런 신호를 '괜히 예민하게 굴지 말자'며 머리로 덮어버리다 보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과 해야 한다고 배운 것이 어느새 내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돼요. 그러다 문득 '나는 정말 뭘 원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해지곤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는 감각을 잃어버려요. 밥을 먹으면서도 머리는 오후 회의를 걱정하고, 산책을 하면서도 어제 들은 말을 곱씹죠. 입안에 퍼지는 음식의 맛, 뺨에 닿는 바람, 등에 내려앉는 햇살의 온기는 오직 몸으로만 느낄 수 있어요. 머리가 과거와 미래를 바쁘게 오가는 동안 우리를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해주는 건 몸이거든요. 몸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대신 삶에 대해 생각만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몰라요.
몸의 지혜를 되찾는 3가지 방법
오랫동안 머리의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다면 처음에는 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몸은 언제나 거기에 있거든요. 몸에게 조금씩 말을 걸면서 몸을 잘 감각해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몸과 훨씬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밑미레터에서는 일상에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할게요.
우선, 몸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연습을 해봐요.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잠들기 전 잠깐 눈을 감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느껴보면서 몸을 알아차리고 괜찮은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어봐 주는 거예요.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알아차려 주는 것만으로도 긴장은 풀리고 훨씬 더 편안해질 거예요.
강렬한 감정이 올라올 땐, 몸의 어디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느껴보는 연습을 해봐요. 생각으로 이유를 만들어 내기 전에 몸을 느껴주는 거예요. 가슴에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인지, 머리에 느껴지는 조여오는 느낌인지, 감정의 종류에 따라 느껴지는 감각도 다를 거예요.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면서 천천히 알아차려 주세요.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그 감각을 느껴주다 보면 감정도 감각도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움직여보세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스마트워치의 숫자 대신 숨이 차오르는 느낌을 따라 운동의 속도를 조절해 보고, 피곤하다는 느낌이 오면 일단 한 번 쉬어주는 거예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응답할수록 몸은 점점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고 몸의 지혜를 알아차리는 우리의 능력도 점점 더 키워질 거예요.





